가덕도냐, 밀양이냐! 동남권(영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을 앞두고 벌어지는 논쟁과 갈등이 거의 내전(內戰) 수준으로 확산되고 있다. 가덕도를 미는 부산과 밀양을 지지하는 대구·경북·울산·경남 간 지역갈등이 전쟁을 방불케 하고 있다. 지자체에 정치인·학계·시민단체·지역언론까지 가세한 사활을 건 총력전으로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상대편에서 불복하는 심각한 후유증이 예상되고 있다.

지난 14일 저녁 부산에서는 ‘가덕신공항 유치, 범(汎)시민 궐기대회’가 시내 중심가(광복로)에서 열렸다. 새누리당 의원 3명과 더민주당 의원 3명이 가세했다. 일부 참가자는 삭발식을 가졌다. 급기야 ‘민란(民亂)이 일어난다’는 협박성 문구까지 내걸렸다. 그에 앞서 4개 광역단체장들은 이날 오후 밀양시청에서 긴급 회동을 가졌다. 이들은 “지역 갈등 조장행위를 중단하자”는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며 맞대응했다.

양 진영이 모두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며 ‘배수진(背水陳)’을 친 셈이다. 지난해 5월의 해당 5개 광역단체장 간의 과열 유치경쟁 자제의 금석맹약(金石盟約)은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정부는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ADPi)에 용역을 주었다. 그러나 입지 선정 용역 결과 발표가 이달 24일로 다가오면서 5년 전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합의는 깨지고, 여야 정치인들의 과도한 개입으로 ‘신공항 발(發) 정계 개편설’까지 등장하는 상황이 됐다.

동남권 신공항은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하다 2011년 이명박 전 대통령 때 ‘경제성이 없다’며 백지화 되었으나, 지난 대선 때 여야 후보가 공약으로 내세워서 다시 하게 된 사업이다. 그러나 생사를 건 과열 유치 경쟁으로 신공항이 지역 갈등과 국론 분열의 뇌관이 된다면 정상적인 사업 시행 자체도 장담하기 어렵게 된다. 황교안 총리는 관련 부처 장관을 소집해 신공항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한 종합대책을 세워야 한다.

동남권 신공항 사업은 10조 원 가량 국비가 투입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따라서 철저히 경제논리로만 봐야 한다. 정치논리가 개입되면 신공항은 극심한 갈등을 초래하고 실패할 확률이 높아진다. 정부는 발표 전에 단체장들에게 ‘결과에 승복한다’는 약속을 받아 내든가 그렇지 않으면 입지선정 발표를 연기하고 다른 획기적인 사업 추진 방식이 없는지 찾아볼 필요가 있다.

가덕도와 밀양은 2009년 국토연구원 분석에서 두 지역 다 경제성 미흡으로 나타났다. 2011년 평가 시 가덕도와 밀양 간에는 후보지 간 여객수요, 경제성, 접근성, 성장가능성 등 평가점수가 별 차이가 없었다. 이같이 지역 간 유치경쟁이 치열할 경우 당해 지자체의 공항 건설비용 부담 정도를 평가의 주요 조건으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

프랑스는 1982년부터 SOC 등 지역개발 대형프로젝트 추진에 있어 ‘계획계약’ 제도를 도입하여 프로젝트에 대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재원부담 등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자체에서 국가 경쟁력 제고뿐만 아니라 지역발전에 엄청난 효과를 가져오는 사업에 지자체에서 전혀 부담이나 기여를 하지 않고 죽기살기식의 유치에만 열을 올리는 것은 ‘PIMPY 현상(Please In My Front Yard / 제발 내 집 앞마당에!)’의 극치이다.

과거 양양공항, 청주공항, 무안공항 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지자체 부담은 전혀 없이 정치논리로 결정된 공항들이 엄청난 국민혈세만 낭비한 사례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차제에 여야 정치권은 ‘신공항 정치 불개입’ 원칙을 천명해서 국론분열을 막는 데 앞장서야 한다.

신공항 유치 희망 지자체들은 지금부터라도 10조원 중 얼마를 자체적으로 부담하고 어떤 기여를 할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 그리고 결과에 승복하자고 지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전액 국가 예산으로 건설되는 ‘로또식’ 국책사업에 원전이나 방사성 폐기물질 처분시설 등 주민 반대에 부딪혀 진척을 보지 못하는 국책산업을 패키지로 묶어 추진하자는 방안도 내놓고 있다.

신공항 유치 희망 지자체들은 정부가 신공항과 함께 혐오시설을 받으라고 하면 기꺼이 수용할 것인지도 밝혀야 한다. 이번 기회에 정부도 국책사업 입지 선정의 원칙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경제적·기술적 평가 외에 지자체가 내놓은 기여 약속과 두 지역의 주민동의율 등도 평가 항목에 추가해야 한다.


우종철 논설주간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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