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서울 생활 30년을 북한산 자락에서만 살았다. 산과 숲이 주는 정겨움이 산동네를 고집한 이유였지만, 무엇보다 도심에 비해 조용하고 공기가 좋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요즘와선 이런 생각에 회의가 들고 있다. ‘미세먼지 비상사태’ 때문이다.

5월 31일 수도권 미세먼지 농도가 168㎍/㎥까지 치솟았다. ‘매우 나쁨’으로 평소의 2배 수준이다. 1주일 사이 엿새나 ‘나쁨’ 이상으로 종일 뿌연 잿빛 하늘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거리뿐만 아니라 골프장에서조차 마스크를 하고 운동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의 대기오염은 이제 임계점을 지났다.

미세먼지는 1군 발암물질로 분류된다. 머리카락 굵기의 5분의 1~30분의 1에 불과한 미세먼지를 흡입할 경우 호흡기 및 심혈관계 질환이 유발된다. 통계에 의하면 2014년 한 해 미세먼지 때문에 기대수명보다 일찍 사망한 사람이 세계적으로 7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금수강산(錦繡江山)이나 천고마비(天高馬肥) 등과 같은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옛말들도 모두 다 말고 푸른 하늘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제 정부는 국민건강과 환경을 지키기 위해 정권의 명운을 걸고 ‘소리 없는 살인자’인 미세먼지와의 전쟁을 시작해야 한다.

깨끗한 물도 사 먹어야 하듯 깨끗한 공기도 공짜로 얻을 수 없는 법이다. 국민 건강에 큰 위협으로 등장한 미세먼지의 근본적 해결책 마련에는 상당한 예산이 들고 많은 시일이 걸릴 것이다.

원인을 알아야 처방이 나오는 법. 미세먼지의 발생 원인은 복잡다양하다. 중국에서 날아오는 오염물질, 석탄 화력발전소와 경유차, 공사장·소각장 등의 배출원이 얽혀 있다. 이참에 미세먼지 발생원인, 구성내용, 이동경로 등을 정확히 파악하여 종합대책을 세워야 한다.

일모도원(日暮途遠). 할 일은 많지만 시간이 없다. 가야 할 길은 먼데, 정부의 발걸음은 너무 한가하다. 정부는 법 개정 없이 곧바로 시행이 가능한 대책부터 서둘러 마무리해야 한다. 차제에 대기 질 개선을 위한 중장기 방안도 꼼꼼히 마련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5월 10일 국무회의에서 “미세먼지는 국민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문제로,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대책 마련을 지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6월 3일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관계부처 장관회의를 개최하고 ‘미세먼지 관리 특별대책’을 확정 발표했다.


정부의 대책은 당장 급한 불을 꺼야 할 상황에서 단기적 가시적인 효과를 낼만한 방안에 치중하여 △수송 △발전·산업 △생활 주변 △해외 유입 분야 등으로 나뉘어 마련됐다.

수송 분야에서는 서울시·인천시·경기도 등 지방자치단체와 협조해 그동안 유명무실했던 노후 경유차 운행제한제도(LEZ)가 강화될 계획이다. 발전 분야에서는 노후 석탄발전소 10기의 폐지·대체·연료 전환을 추진하고 새로 짓는 석탄발전소 9기에는 엄격한 배출 기준이 적용된다. 산업 분야에서는 수도권 대기오염총량제 적용 사업장을 확대하고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는 미세먼지 다량 배출 사업장 배출허용기준이 강화된다. 생활 분야에서는 건설현장 관리와 폐기물 불법 소각 규제가 강화된다. 해외 유입 분야에서는 한·중 공동 미세먼지 실증사업과 대기질 측정자료 공유 도시를 확대한다.

국내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전력수요에서 수상태양광·풍력·지력 등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과감히 확대해서 원자력-화력발전-신재생에너지의 포트폴리오를 다시 짜나가야 할 시점이 됐다고 본다.

2012~2014년 기준 우리나라의 미세먼지 농도는 선진국의 도시와 비교해보면 매우 높다. 서울의 미세먼지(PM 10, 황사포함) 농도는 미국 LA보다 1.5배 높고,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보다 각각 2.1배, 2.3배 높다.

주무부처인 환경부는 지난 2005년 이후 미세먼지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1년 넘게 헛발질을 거듭하고 있다. 이날의 발표내용은 11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재탕 급조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추진할 TF팀을 오는 7월부터 내년 1월까지 가동하고, 핵심과제별 세부 이행계획을 마련할 방침이라 한다. 11년 전의 우(愚)를 범하지 않길 기대한다. 현 정부 최장수 장관이기도한 환경부 장관은 대오각성(大悟覺醒)해야 한다. 야3당의 “구태의연한 일회성 정책”이라는 비판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황교안 총리는 “정부는 이런 대책을 통해 미세먼지 농도를 10년 내에 유럽의 주요 도시 수준까지 개선하겠다”고 선언했다. 황 총리의 말이 실언(失言)이 되지 않도록, 이번 미세먼지 해소 대책에 총리직을 걸어야 한다.


우종철 논설주간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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