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지금 대한민국은 총체적 난국(亂國)에 처해 있다. 10년 가까이 일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고개를 넘지 못하고 청년실업과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다. 그러나 안보·대북관계와 경제·외교 모두 ‘희망이 없다’는 비관론이 팽배해 있다.

역사상 동아시아에는 권력이동(power shift)이 있었을 때 한반도는 반드시 전쟁이 발발했다. 원명(元明) 교체
기인 14세기 중반 홍건적이 고려를 침공했고, 일본이 포르투갈로부터 조총을 전래받은 1592년에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명청(明淸) 교체기인 17세기 초에 ‘재조지은(再造之恩)’을 내세워 명나라 편을 들다가 정묘호란·병자호란이 일어났으며, 19세기 말 청의 쇠락과 일본의 부상 시기에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했다. 미국과 소련으로 세계질서가 재편되던 1950년에 6.25전쟁이 발발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수많은 국난(國難)을 극복한 대한민국이 성공신화를 쓴 비결은 여러 가지를 얘기할 수 있지만, 크게 보아 역대 국가지도자들의 미래지향적 리더십,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 잘살아보자는 국민의 단합된 힘, 투철한 안보의식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분단국가에서는 안보가 국가정책 어느 사안보다 중요하다. 만약 우리 국민의 굳건한 안보의식이 없었다면 2차 대전 이후 등장한 89개 신생국 중에서 산업화·민주화를 동시에 성공시킨 유일한 나라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20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야당심판론’이나 ‘경제심판론’ 같은 각종 심판론과 퍼주기 ‘복지타령’만이 난무할 뿐 안보가 실종된 이상한 선거를 치르고 있다.

대신 새누리당과 더민주당이 내놓은 주요 지역개발공약을 이행하려면 174조 원의 사업비가 필요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동아일보 4월 6일 보도). 이는 정부가 올해 집행하는 사회간접자본(SOC) 예산(23조원)만큼의 나랏돈을 향후 7년간 매년 쏟아 부어도 지키기 어려운 규모로 부도수표가 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이처럼 여야를 불문한 총체적인 정치권의 ‘포퓰리즘 공약’과 ‘안보불감증’이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개성공단을 폐쇄해서 배수진(背水陣)을 쳤는데도 말이다.

미국 대선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 공화당 대선후보가 언급한 ‘한·일 핵무장론’이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지만 정작 한국 총선에서는 핵문제 논의가 실종됐다. 여야 어느 정당도 ‘핵 전문가’를 공천했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없다.

북한 김정은은 할아버지, 아버지보다 더 종잡을 수 없는 난폭하고 잔인한 인물이다. 이미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했고, 청와대 직접 타격을 거론하는 등 심각한 안보위기를 조장하고 있는 위험한 인물이다.

이에 대비해서 지난 1월 6일 북의 4차 핵실험 이후 세 달 동안 국회가 한 일이라고는 ‘북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 규탄 결의안’을 채택한 것(2월 10일)이 유일하다. 그나마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옥새투쟁’을 벌이느라 2월 25일 개최됐던 ‘제1회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마저 불참했다.

여야 주요 정당이 내놓은 안보 공약도 양과 질 모두 부실하기 짝이 없다. 하는 일도 없고 해볼 방안도 없는 ‘무위무책(無爲無策)’이다. 새누리당은 7개, 더민주당도 7개에 불과하다. ‘안보는 보수’를 내세운 국민의당은 아예 없다. 대한민국의 운명과 직결되는 안보 이슈가 완전히 실종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깨어 있는 유권자들이 여야 정당과 개별 후보들의 안보 관련 총선공약을 찬찬히 살펴봐야 한다. 그리하여 국민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내용이 있는지 판단하고 투표해야 한다.

특히 근본적인 안보위기 해소를 위한 대안 제시는 못하면서 ‘군 복무기간 단축’과 ‘사병 처우 개선’ 같은 대안 없고 포퓰리즘적인 공약을 내놓은 정당이나 후보에 대해서는 표로서 심판해야 한다.

임진왜란 당시 중국의 군사전략가와 지식인들은 ‘조선이 쇠약한 3가지 이유’에 대해 “조선 관리들이 시나 읊조리며 기생을 끼고 앉아 국사는 팽개친 ‘국사태만(國事怠慢)’과 글에만 열중하여 신체적으로 나약한 ‘문약(文弱)’, 그리고 조선이 중국만을 믿고 무기를 방기해 거의 황폐하게 된 ‘중국의존(中國依存)’에 있다”고 하였다.

안보는 “누가(미국 등) 해주겠지” 하는 의존성에 젖게 되면 나라가 망하게 된다. 월남 패망의 교훈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대한민국은 체제를 가장 앞장서서 수호해야 할 정치인들이 무책임하게 ‘무위무책’으로 지새우는 나라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열강들은 대한민국의 안위보다 자국의 이익에 관심이 있다. 믿을 곳은 결국 우리 스스로밖에 없다. 남이 내 신체와 내 정신을 강하게 해줄 수 없다. 자강불식(自强不息)이 안보의 첩경이다.


우종철 논설주간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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